Chapter 131
“`html
6층의 인형으로 내가 준비했던 것은 거미와 인간을 섞어 만든 형태였다. 거미의 몸에 인간의 상체가 달려있는 모습 말이다. 마지막 인형이기에 꽤 공을 들이기도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녀석이 지금 완전히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쓰러진 녀석은 그대로 우리를 보며 그 입을 벌렸다. 루미라가 본능적으로 몸을 피하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녀석의 벌린 입에서는 그저 바람 빠지는 소리만 새어 나올 뿐이었다. 원래라면 그 입에서 모든 것을 녹여대던 거미줄을 뿜어냈겠지. 하지만 녀석의 목덜미에는 깊은 구멍이 나 있었다.
녀석의 몸에 존재하는 모든 결이 모이는 하나의 지점이었다. 내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그 약점을 루미라가 찌른 결과물이었고. 그 하나의 상처만으로 녀석은 지금처럼 무너지고 말았다.
녀석이 그렇게 몸을 축 늘어뜨렸다. 그와 함께 녀석의 몸에서 일렁이던 탁한 마력이 점차 그 중심을 잃고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녀석이 완전히 쓰러진 것이다.
그걸 확인하고는 공중에 떠올랐다. 작게 날갯짓하며 루미라의 앞에서 가루를 흩뿌렸다. 그리고 작은 폭발 마법을 일으키며 반짝거리는 빛을 만들어냈다. 그대로 손뼉을 치며 방긋 웃었다.
“승리를 축하드려요. 정말 대단하세요!”
“흠흠, 그래.”
루미라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방긋방긋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번 층을 통과하는 데에도 그렇게 많은 시간이 들지 않았다. 고작 5번밖에 안 죽었으니.
거미 인형을 힐끔 바라보았다. 녀석이 그 입에서 거미줄을 내뱉지만 않았어도 더 짧게 끝났을 텐데. 녀석에게 일어난 변형의 방식은 아주 기괴했다.
루미라가 방금까지의 전투를 복기하는 듯 작은 마법진을 그려냈다. 그러자 그 안에서 반투명한 송곳 하나가 튀어나왔다. 거미 인형의 목을 꿰뚫은 것이었다.
그 송곳이 천천히 회전하는 것을 보며 조금 침을 삼켰다. 그 날카로움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 곁에 있기만 해도 이 몸이 찢길 게 분명했다. 내 본체도 저건 절대 못 막았다.
“그럼 몸을 가다듬고 계세요. 저는 저 아이를 마중해주고 올게요!”
슬쩍 그 송곳으로부터 거리를 벌리며 말했다. 루미라가 나를 힐끔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대로 자리를 잡고 눈을 감았다.
그녀가 가볍게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마력이 모여드는 것이 보였다. 거미 인형에게서 흘러나오는 것들이었다. 그저 탁하기만 했던 그 마력은 그렇게 정화되어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것은 심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저건 인형 내부에 깃들어있던 심마가 깨끗하게 정리되는 과정이라고 해야겠지.
이번 것이 그녀에게 존재하는 실질적인 마지막 심마였다. 루미라가 여태 느껴온 짙은 후회의 감정이 그 안에 겹겹이 쌓여있던 것이었다. 그 감정은 실처럼 그녀를 잡아당기며 그녀의 경지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심마를 쓰러트렸으니 이제 그 후회는 루미라의 발목을 잡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괜히 비싼 점수를 받아낸 꿈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거미 인형을 향해 날아갔다.
축 늘어진 녀석의 몸은 점차 흐릿해지고 있었다. 녀석이 사라지기 전에 빠르게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녀석의 몸에 내려앉았다.
이 녀석이 내가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 인형이었다. 미라는 이전에 수정구에서 보았을 때처럼, 루미라의 심마에 영향을 안 받았으니 말이다. 가볍게 코를 긁적이며 녀석의 가슴에 자리 잡았다.
천천히 눈을 감고 마력을 일으켰다. 그 미약한 마력이 서서히 거미 인형의 몸으로 향했다. 그렇게 녀석의 회로를 따라 마력을 흘려 흐름을 관찰하며 녀석의 몸을 샅샅이 훑어나가기 시작했다.
많이 변형된 녀석의 몸은 그 흐름이 꽤 고여있었다. 마지막 심마인 탓일까, 그 마력의 잔향 역시 이전보다 진득하게 남아있었고 말이다. 그것은 아직도 빠져나가지 않은 채 여기저기 그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런 잔향을 더듬어 녀석의 마력 심장까지 도달했다. 내 마력을 느낀 것인지 그 심장이 가볍게 나와 감응하기 시작했다. 그 몸이 내 마력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그렇게 마력 심장을 향해 의지를 보냈다. 내 의지를 느낀 녀석이 천천히 인형의 가슴을 가르고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아들였다.
마력 심장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이렇게 생명이 다 했다는 건 곧 이 꿈속에서 사라진다는 이야기였다. 빠르게 눈에 마력을 담아 그것을 살폈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거미 인형의 심장 역시 이전 녀석들과 마찬가지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그 안에 담긴 탁한 마력이 내 마력을 느끼고 살짝 꿈틀댔다.
마력 심장 속에 담긴 심마는 아직도 움직이고 있었다. 이처럼 심마는 인형의 마력 심장에 반쯤 동화되어 그 몸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었다. 변형도 만들어내고, 그 힘을 증폭시키기도 하고. 아주 살판이 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중심에는 이게 있었다. 그 심장을 갈랐다. 그러자 그 안에 마법진과 함께 어우러진 조그마한 나무줄기가 보였다.
그 나무 조각은 인형의 자아를 이루는 핵심이었다. 내게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고. 그것을 꺼내 그 모습을 차분히 관찰해보았다. 탁한 마력은 거기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마력은 이전에 확인했던 녀석들보다 훨씬 생동감 넘치게 꿈틀대고 있었다. 그 마력을 손에 담아 가볍게 매만져보았다. 그런 손끝을 타고 약간의 저림이 느껴졌다. 그건 일종의 오염이기도 했다.
그걸 손가락 사이로 흘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 심마라는 놈은,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이처럼 내 나무 조각과 상성이 잘 맞았다.
내 고유 마법 때문일까. 가짜 영혼, 모든 인형에는 그 나무 조각을 중심으로 내 고유 마법이 새겨져 있었다.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마법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렇게 마법진을 벗어난 조각 역시 그 힘을 품으니.
그렇다면 내 나무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가. 나무를 인형에 심는 건 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인형들이 이토록 날뛴 걸까. 고개를 갸웃했다. 내 나무가 무슨 작용을 한다고.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는 도중 머리를 스친 생각이 하나 있었다. 손에 든 나무 조각을 만지작거렸다. 그 너머에 일렁이는 탁한 마력이 새어 나오며 손끝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어째서 미라는 심마에 휩쓸리지 않을까. 그 이유는 분명했다. 그녀가 지닌 욕망이 아주 선명하기 때문이었다. 보물에게 욕망은 존재의 이유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보물의 욕망이라, 심마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이 심마라는 것, 어찌 보면 보물의 욕망과도 닮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하위 개념이라고 해야 할까. 그저 부정적인 감정을 한없이 뭉친 것이기는 하지만, 그건 일종의 뚜렷한 방향성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나무 조각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 담겨있는 탁한 마력- 그 심마의 잔재를 확인하며 눈을 깜빡였다. 내 나무가 보물의 마력을 너무나 담아낸 탓에 그에 길들여진 것일까.
하지만 그건 조금 아리송했다. 만약 보물의 마력에 끝없이 길들게 된다면 하오의 나무와 같은 형상을 가지게 될 것이었다. 나는 그런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내 나무만큼은 순수한 내 마력만으로 키워냈다.
그러니 내 나무 조각은 그다지 매력적인 매개체는 아니었다. 그대로 턱을 슬쩍 쓸었다. 그리고 이전 인형들의 모습이 어떠했던가 차분히 점검해보았다.
첫 번째 상대였던 늑대 인형은 아쉽게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 변화의 모습만 보고도 조금은 유추할 수 있었다.
그리고 2층의 소 인형부터는 지금과 같이 모두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녀석들은 그 가슴에서 비롯된 심마의 마력에 아주 크게 휩쓸렸다. 연기라는 것을 잊고, 또 그 마력이 주는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렇게 그저 마력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던 것이었다. 그건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손가락을 살짝 튕겼다. 그런 녀석들의 모습은, 교수님을 향해 집착하던 나와 어쩐지 닮아있었다.
그런 집착 역시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으니까. 원래라면 충분히 절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 역시 보물의 욕망에 내 예상보다 훨씬 깊게 물들고 말았었다. 결국 크게 사고를 치고 말았을 정도로 말이다.
나무라. 어쩌면 나 역시 저들 같은 경우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게 내 집착을 증대시키는 또 하나의 이유일지도 몰랐고.
하지만 그게 정확히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내 나무에서 비롯된 것일지, 아니면 영혼에서 비롯된 것인지. 나무란 영혼이 피어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 안에 있는 무언가, 아직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가슴에 살짝 손을 얹었다. 그리고 그 너머의 나무를 느꼈다.
녀석에게 무슨 비밀이 있는 것일까. 녀석이 그런 내 의지에 가지를 살짝 흔들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선명한 의지가 드러났다. 녀석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상황에 의아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에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모른다면 녀석 역시 모를 수밖에 없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고. 그대로 손을 털었다. 그러자 마력 심장이 그대로 흩어져 사라졌다.
사라지는 인형을 내려다보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타인의 꿈에서 이처럼 내 이상에 대한 단서를 잡게 될 줄은 몰랐다. 모두 이 인형들 덕분이었다.
“끝났으면 이리 와.”
루미라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긋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을 가다듬었다. 이 생각은 여기서 멈추고, 일단 이 꿈을 먼저 완성할 필요가 있었다.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여섯 개의 층을 통과했다. 이제 문제는 모두 해결되었다. 이제 이 꿈에 남은 것은 오직 하나, 미라 밖에 없었다. 그녀만 상대하고 나면 꿈은 끝을 맺을 것이었다.
빠르게 날갯짓해 루미라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 위에 내려앉으며 주변을 살폈다. 그녀는 이미 움직일 준비를 모두 마친 듯했다.
“7층은 정말 조심하셔야 해요! 무시무시한 분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루미라가 나를 보며 고개를 살짝 갸웃해 보였다. 그녀가 내 뒷말을 기다리듯 조금 더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약점은 말 안 해주는 건가?”
그에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가볍게 날아올랐다. 그대로 루미라와 시선을 마주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쉽지만, 그분께 다른 아이들과 같은 뚜렷한 약점은 없어요. 그저 최선을 다해 상대하셔야만 해요.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가슴에 손을 올린 채 고개를 숙였다. 이번 마지막 싸움의 경우에는 문제가 없으니 약점을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문제가 생긴 지점이 아니었으니. 또, 약점이랄 게 정말 없기도 했고.
미라의 몸을 떠올렸다. 내가 구성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만들어낸 그 몸을. 그런 그녀에게는 다른 인형들과 다르게 그 어떤 약점도 부여하지 않았다.
단순히 그 몸을 건드는 게 아깝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가 상징하는 심마로서의 위치 때문이었다. 루미라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녀는 7층에 오르는 걸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7층에 오른다는 것은 곧, 완전한 나무의 경지를 벗어나는 것을 의미했다. 그 나무가 가지를 뻗으며 인간이라는 종을 온전히 벗어나게 되는 것이었다.
경지를 상승시키는 것은 아주 요원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벽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 벽을 넘지 못해 죽고는 했다. 그녀 역시 그렇게 벽에 부딪히다 꿈을 산 것이었고.
미라는 그러한 벽으로서의 심마를 의미했다. 아무리 도전해도 절대 뚫리지 않는 그 벽을 바라보는 루미라의 절망이 그녀에게 깃들어있었다.
그러니 그 벽을 담당한 미라에게 오점은 존재해서는 안 됐다. 만약 내가 고의로 약점을 부여해 강제로 뚫어내려고 한다면 꿈이 망가질 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저 끝없이 싸워 결국 이겨내는 수밖에 없었다.
루미라가 잠깐 생각에 잠긴 것을 보고는 그녀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방긋 웃어 보이며 주먹을 흔들었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마법사님은 반드시 승리할 거니까요! 제가 보장할 테니, 지금까지처럼 저만 믿으시면 돼요!”
그건 이 연극에 정해져 있는 결과이기도 했다. 그런 내 자신감을 느꼈는지 루미라가 피식 웃으며 내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주머니에 담았다.
“그럼 바로 최상층으로 가보도록 할까.”
“6층을 통과한 기념으로 조금 쉬지는 않으시고요?”
그녀는 여태 한 층 통과할 때마다 그렇게 내 보살핌을 즐기고는 했다. 루미라가 잠깐 자기 몸을 더듬더니,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 번 얼굴을 마주해본 다음에. 일단 그 힘을 파악해봐야겠다. 아무래도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 같으니.”
그녀가 무언가를 예감한 듯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게 그녀가 마지막 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나 역시 그런 그녀의 주머니 속에서 다음 층으로 향하는 길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어갔을까. 공동이 하나 보였다. 그 너머에서 흐릿한 장미 향이 맡아지기 시작했다. 미라에게서 비롯된 것이 분명했다. 루미라는 그런 장미 향을 느끼지 못한 듯 그곳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발을 들인 공동의 풍경은 다른 층과 아주 똑 닮아있었다. 그리고 그런 공동의 중심, 커다란 의자에 기대앉아 있는 여인이 한 명 보였다. 고급스러운 로브를 걸친 그녀에게서는 기품이 묻어나고 있었다.
안경을 눈에 걸친 채 무언가를 읽어가던 여인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그것을 내려놓았다. 루미라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더니 나를 힐끔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그 외모가 비슷하기 때문이겠지.
루미라는 우리 둘을 번갈아 보다 혼자 어떤 납득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여인, 미라를 바라보았다. 미라에게서는 고요한 마력만이 일고 있었다.
그 심마에게서 비롯된 마력은 미라의 몸에 조용히 가라앉아 있을 것이었다. 그녀 역시 우리를 기다리며 모든 준비를 철저히 끝낸 모양이었다. 루미라의 귓가에 날아올라 살짝 속삭였다.
“저분이 탑의 주인이에요. 조심하세요. 아주 강하니까요.”
루미라가 마력을 일으켜 마법진을 겹겹이 쌓았다. 그리고 미라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미라가 그런 루미라를 힐끗 보더니 살짝 웃어 보였다.
“손님 하나가 오셨네요.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그리 말한 미라의 눈이 살짝 돌아 나에게로 향했다. 그녀가 그대로 눈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서는 숨길 수 없는 즐거움이 잔뜩 엿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노예 하나도. 아주 괘씸해요. 다른 이에게 그렇게 달라붙다니.”
그리 말한 그녀의 눈에 약간의 살기도 흘렀다. 그에 슬쩍 주머니 속에 몸을 숨겼다. 그 눈에 담긴 건 연기도 있기는 했지만, 그녀에게서 비롯된 진심 역시 느껴지고 있었다.
루미라가 그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라를 마주했다. 그녀가 그대로 마력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이 탑에 말하는 놈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네가 마지막이겠지.”
미라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렇게 웃음을 토해내는 그녀에게서 아주 매혹적인 장미 향이 흘러나왔다. 그것이 공동 전체를 향해 흐르는 듯했다. 미라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네. 그렇답니다. 저만 쓰러진다면 이 탑은 무너지겠죠.”
그런 미라의 말에 루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법을 천천히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그 마법진 속에서 여러 개의 송곳이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것을 손끝으로 매만지며 미라를 노려보았다.
“그럼 이야기는 필요 없겠지. 너도 죽어라.”
그 눈에서 살기가 가득 담겨 번뜩였다. 정말 마법사다운 마음가짐이었다. 내게는 친절하기만 해서 몰랐지만, 아마 이것이 그녀의 본모습일 게 분명했다.
“어머나, 야만스럽긴. 이렇게 말하려고 얼마나 기다렸는데 말이에요.”
미라가 볼을 살짝 부풀리며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그건 연기가 아니라 진짜 그녀가 내뱉은 말이었다.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이번 연기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사말에 소개말까지 모두 종이 한 장을 채울 정도로 정리해놓았던 것을 보았으니 말이다. 루미라는 그런 미라의 투정 섞인 말을 흘려들으며 송곳을 빠르게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그런 송곳들이 미라를 향해 마치 광선과도 같이 쏘아지며 그 궤적을 허공에 수놓았다. 단순히 주변에 퍼지는 그 마력의 잔향만으로도 그 송곳들의 힘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을 정도였다.
미라가 그것을 바라보다 손가락을 흔들었다. 그러자 안개가 순식간에 그녀의 주변을 감쌌다. 그리고 그 속에서 거대한 손이 뻗어져 나왔다. 거무튀튀한 형상을 한 거인의 손이었다.
그걸 보며 작게 눈을 깜빡였다. 저게 뭐지. 저건 안개가 뭉친 것이라 할 수 없었다. 그것보다는 살아있는 생명의 일부라고 하는 것이 옳았다. 미라의 안개에 저런 기능 역시 있었던가.
그 손이 그대로 송곳들을 받아냈다. 송곳이 그 손 가죽을 파고들었으나, 그 살을 꿰뚫지는 못했다. 손이 주먹을 꽉 쥐며 그 모든 송곳을 분쇄하더니 그대로 안개 속으로 다시 자취를 감췄다.
미라가 안개를 다시금 불러 모으더니 턱에 손을 괴었다. 그리고 루미라를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이야기할 생각은 여전히 없으신가요?”
루미라가 그런 미라를 향해 살짝 혀를 차더니, 그대로 그 몸에서 마력을 강하게 내뿜었다. 내 몸이 저릴 정도로 많은 마력이 허공에 쏟아지고, 그것들이 마법진을 구성하며 송곳들을 잔뜩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루미라가 그 마법만 쓰는 이유는 분명했다. 빠르고 쉽게 미라를 죽이기 위함이었다. 그런 그녀의 태도에 미라가 턱을 살짝 긁적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송곳들이 다시금 미라를 향해 쏟아졌다. 사방에서 휘몰아치며 그녀를 향해 몰려드는 그 송곳의 흐름은 마치 하나의 소용돌이와도 같았다. 가까이 있는 것을 모두 찢어발기는 흐름 말이다.
미라가 그걸 보고 다시금 안개를 일렁였다. 하지만 송곳들은 그런 안개를 찢어발기며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 미라가 안개를 뿜어내는 것보다 더 빠르게 그 몸 근처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송곳들이 미라의 바로 앞까지 쏘아졌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옆에는 어느새 나타난 아까의 거대한 손이 존재했다. 손이 그대로 그녀의 몸을 감싸 쥐었다.
루미라가 쏘아 보낸 송곳 더미가 그런 손에 빽빽하게 박혀 들었다. 그것들은 그 살갗을 찢고 부수며 그 안에 담긴 미라를 노렸다. 그리고 그건 금방이라도 성공할 듯했다. 또 하나의 손이 나타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안개 속에서 피어난 또 다른 손이 그대로 송곳의 소용돌이를 내리찍었다. 몇몇 송곳이 반격하듯 그런 손을 향해 쏘아졌지만, 손은 자신이 뚫리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오직 소용돌이만을 부수는 데 집중했다.
루미라가 마법을 흐트러뜨리는 그 충격 속에서 몸을 비틀거렸다. 그와 함께 그녀의 마법에 잠깐 빈틈이 생겼다. 미라를 감싸고 있던 손이 순식간에 그 손바닥을 펼치며 송곳 더미를 부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송곳을 때려 부순 손이 자연스럽게 미라의 곁으로 돌아갔다. 미라가 그런 양손을 부드럽게 쓰다듬더니 가볍게 웃었다.
“후후, 만족스럽네요. 역시 여긴 재미있답니다. 이 손을 다시 만들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그리 중얼거린 그녀가 마법이 터져나간 반작용으로 그 몸을 굳힌 루미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런 그녀의 손끝에서 안개가 뭉쳐 흐르기 시작했다.
“조금 진정하고 다시 오셔야겠네요. 그럼 다음 기회에 뵈어요. 다음에는 다른 방식을 쓰셔야 한답니다.”
미라가 그대로 안개로 루미라의 몸을 감싸 안았다. 그 안개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루미라가 마력을 짜내 그 송곳을 뽑아내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쏘아 보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 근원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 주변을 살피던 루미라의 얼굴이 어느 순간 멍하니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그 몸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녀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점차 흐릿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저 안개에 휩싸인 것만으로 죽고 만 것이었다.
그걸 확인하고는 살짝 눈을 감았다. 그랬지, 미라의 안개는 생명을 먹어 치우는 데에 특화되어 있었다. 그녀가 그런 방향으로는 안개를 잘 사용하지 않았기에 잊고 있던 것이었다.
루미라가 죽었으니, 이번 시도는 실패였다. 나 역시 그렇게 가만히 죽음을 기다렸다. 하지만 안개는 내 몸 근처를 그저 흐르듯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그 안개가 내 몸을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미라의 앞으로 나를 옮기기 시작했다. 미라를 마주하고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아, 그랬지. 이제 나는 꿈에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굳이 루미라와 같이 죽을 필요도 없었다.
미라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에게 고개를 슬쩍 숙여 보였다. 그녀가 같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푸흡, 이안이라고 했던가요. 노력하신 모습은 잘 보았답니다. 어찌나 재미있던지.”
그녀가 웃음을 참아내듯 몇 번 입을 가리며 쿡쿡대더니 결국 나를 향해 실실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걸 보며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껏 웃으셔도 됩니다.”
내가 재롱을 피우는 모습을 그녀도 다 본 듯했다. 그렇겠지. 아래층을 그녀 역시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예상하고 있던 일이기도 했다.
그런 내 말에 미라가 의자의 팔걸이를 두드리며 크게 웃기 시작했다. 후후, 후후후. 하고 끊임없이 웃음을 토해내는 그녀의 모습은 더없이 즐거워 보였다. 그녀가 그렇게 신나게 웃는 걸 보는 건 처음이었다.
한참을 웃음을 토해내던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살짝 인상을 썼다. 그런 내 모습을 본 그녀가 더욱 크게 웃었다. 그걸 보며 결국 포기한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그녀가 진정한 것은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은 후의 일이었다. 그녀가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방긋 웃어 보였다.
“에브론 씨가 꿈에 들어오실 줄은 몰랐답니다. 정말 깜짝 놀랐어요. 게다가 그런 모습으로. 또 교수님인가요?”
미라가 다시금 피식 웃음을 토해냈다.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교수님이라니. 이건 그저 귀여운 걸 떠올리다 만든 물건… 음, 내 생각을 더듬었다. 어쩌면 이걸 만들 때 내 집착이 또 발동했을지도.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보다 이제 어쩌실 계획이십니까.”
미라에게 물었다. 그녀가 방긋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런 그녀의 가벼운 움직임에 따라 안개에서 뻗어온 손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앞선 인형들이 조금 사고를 쳤으니. 최대한 빠르게 꿈을 끝내야겠죠. 저는 이 이야기의 마무리를 깔끔하게 정리할 생각이랍니다.”
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알아서 그 힘을 조절할 게 분명했다. 힘… 하니까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 거대한 손을 살짝 턱짓하며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건 뭡니까? 처음 보는 것인데요.”
“후후, 제가 예전에 만들었던 육신이랍니다.”
육신 말인가. 그녀는 안개인 상태로 세상을 떠돌았다고 들었는데. 미라가 그 손을 가볍게 쓸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육신이 있어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만들던 것이랍니다. 물론 교수님께 박살 나 지금은 없어졌지만요. 이건 그때의 기억을 조금 담아낸 것일 뿐이랍니다.”
말 그대로 꿈이라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런 거대한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손에서 끔찍하기 그지없는 마력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저게 완성되었다면 어떤 모습이 되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녀가 가볍게 손뼉을 쳤다. 그러자 그 손이 흐려지며 사라졌다. 미라가 그대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에브론 씨는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문제는 다 해결하셨는데.”
그 말에 가볍게 턱을 쓸었다. 그 말대로였다. 나는 이제 이 꿈에서 쓸모가 다 했다. 이제 이야기는 마지막을 앞두고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그냥 사라져버리기는 조금 힘들었다. 루미라가 나에게 큰 관심을 주고 있었으니까. 만약 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면 그녀가 의심을 가질 게 분명했다. 그렇게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나를 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의심도 사지 않고, 효과적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그런 방법이. 그대로 미라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나와 시선을 마주하고는 눈웃음을 지었다.
“어떤 방법일까요?”
살짝 그녀의 귓가에 방법을 속삭여주었다. 그것을 들은 미라가 살짝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녀가 그대로 입맛을 다시며 그 입가에 흐르는 침을 살짝 닦아냈다. 그에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 예상이 갔다.
그렇게 미라와 함께 공동을 꾸미기 시작했다. 루미라가 찾아온 것은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은 후의 일이었다. 그녀가 숨을 몰아쉬며 공동으로 뛰어 들어왔다.
“이안, 여기 있나.”
루미라가 말했다. 그 소리가 마력을 타고 공동을 울렸다. 미라가 나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 눈이 가늘게 떠지며 짓궃은 기색을 품었다.
“저런 강한 마법사도 품에 안으시려는 건가요? 저로도 만족을 못 하시다니. 정말 슬프답니다.”
그녀가 그리 속삭였다. 살짝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손을 두드렸다. 지금은 장난치기보다 꿈에 집중할 시간이었다. 미라가 살짝 웃어보이더니 묶여있는 나를 들어보였다.
“흐응, 이 친구를 찾나 보네요.”
루미라가 나를 발견하고는 그 몸을 멈칫했다. 날개를 마구 파닥이며 내 몸을 묶고 있는 안개를 벗어나려 했지만 그것은 마치 고치처럼 나를 감싸안은 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미라가 그런 나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더니 내 머리를 가볍게 짓눌렀다. 그리고 안개의 속박을 한 겹 더 입혔다. 내 몸이 그대로 가라앉았다.
“이 친구는 탑의 요정… 푸흡, 아. 실례했네요. 탑의 요정이 여길 벗어나려고 했다는 것이 너무 우스워서. 감히 저를 배신하려고 하다니 말이에요.”
루미라가 멀리서부터 다가오려 했지만, 곧 그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미라에게서 뿜어져 나온 자욱한 안개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몸을 오들오들 떨며 루미라를 바라보았다. 미라가 그런 나를 들어올려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그녀가 곧 나와 눈을 마주하더니 가볍게 웃었다.
“배신을 한 아이에게는 벌을 주는 게 좋겠죠. 그렇다면 어떤 벌을 주면 될까요.”
미라가 눈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루미라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렇게 우리를 번갈아보던 그녀가 곧 가볍게 손뼉을 쳤다.
“아하, 좋은 방법이 생각났어요. 그냥 제가 먹어버리면 되겠네요. 그래야 더 재밌어질 것 같답니다.”
미라의 말에 루미라가 각종 마법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로 안개를 찢으려 했다. 하지만 안개는 계속해서 흘러나왔고, 또 금세 빈 자리를 메꿨다.
미라가 그대로 나를 손가락으로 잡아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자기 입으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의 손가락에 매달린 채 루미라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녀가 나를 보는 눈동자가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내 임무를 끝마쳤다는 뿌듯함이 섞인 것이었다. 이게 내가 꿈에서 마지막으로 내뱉게 될 말이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마법사님은 꼭 승리하실 거니까요. 저는 그렇게 믿…”
그 말을 끝맺지 못한 채 나는 그대로 미라의 입 속으로 내던져졌다. 그 속에서 피어오른 안개가 내 몸을 천천히 감싸 안았다. 그리고 내 인형의 몸을 부드럽게 녹이기 시작했다.
이건 아주 완벽한 방법이었다. 루미라, 그녀는 탑을 오르며 내게 조금씩 기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내가 미라의 손에 죽는다면 분명 크게 분노하겠지.
일종의 각성을 이루는 보조재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이야기를 더욱 완벽하게 구성할 수 있었다. 내 역할은 여기서 끝이 났다. 더 이상의 부활은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보다 정말 이렇게 먹어버릴 줄은 몰랐는데.
미라는 빈말을 하지 않았다. 정말 나를 집어삼킨 것이다. 이곳이 꿈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쩌고, 루미라를 기다리며 잔뜩 기대한 눈치더라니. 그렇게 나는 그녀의 안개 속에서 녹아내렸다.
그런 내 귓가에 웅성거리는 싸움의 소리가 언뜻 들리는 듯했다. 그렇게 생각의 흐름이 멈추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인형들이 그러하듯, 꿈이 끝날 때까지의 깊은 대기 상태에 빠졌다.
다시금 눈을 뜬 것은 내 몸을 적셔오는 차가운 마력 때문이었다.
그 온몸이 아파올 정도로 시린 마력의 감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빠르게 주변을 훑어보았다. 꿈인가, 아니면 밖인가 그걸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작게 미소를 지었다.
몽중극장의 방이 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모든 꿈이 잘 끝났다는 이야기였다.
“자자, 일어나도록.”
그런 내 몸을 코이트가 발로 살짝 툭툭 건드렸다.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관을 감싸고 있던 마법진, 그게 어느새 방을 다시 휘감고 있었다. 꿈과 함께 현실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마법진 곳곳에 널브러진 인형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꿈에 참여한 내 인형들이었다. 그런 인형들에게 다시금 연결을 이었다. 녀석들이 내 그림자 나무와 연결되며 그 빛을 반짝였다.
녀석들이 그렇게 그 몸을 비틀거리며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천천히 내게 다가와 섰다. 그런 녀석들의 몸을 정돈해주며 가볍게 토닥였다. 이 녀석들이 아주 고생이 많았다.
그리고 어느새 내 곁에 선 미라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녀에게도 마력을 보냈다. 그녀가 그것을 가볍게 받더니 기존에 존재하던 연결을 이루어내기 시작했다.
미라는 꿈속에서의 일이 만족스러웠는지 아주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살짝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입술을 혀로 핥으며 내게 기대 왔다.
“후후, 에브론 씨는 꽤 맛있었답니다. 꿈이라는 건 좋네요. 이렇게 먹어 치워도 걱정이 없으니. 저분도 그 맛이 꽤 좋았고요.”
그녀가 배를 살짝 두드리며 중앙에 위치한 관을 힐끔 바라보았다. 루미라가 들어간 장소였다. 그녀의 꿈이 끝을 맺었으니, 그녀 역시 곧 깨어날 게 분명했다.
그런 관을 향해 마력이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런 마력의 흐름 속에서 관이 들썩였다. 그리고 그 뚜껑이 열리더니 루미라가 몸을 일으켰다. 방금까지 꿈에 머물렀음을 증명하듯 아주 멍한 얼굴이었다.
“자, 현실로 돌아오셨으니 빠르게 정신을 차리셔야 합니다.”
코이트가 그리 말하며 시린 빛을 뿜어내는 마력을 그녀에게 쏟아냈다. 나를 깨웠던 것과 똑같은 마력이었다. 그것이 루미라의 몸에 스며들자 그녀가 몸을 가볍게 떨었다.
그렇게 빠르게 정신을 차린 그녀가 몸을 확인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마력이 물밀듯이 몰려들었다. 그녀를 가로막던 심마가 모두 제거되며, 이렇게 활발한 마력의 흐름을 보유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한 그녀의 마력은 기존과 비교했을 때 그 순도도, 양도, 흐름도 강해져 있었다. 아주 눈에 띄게 말이다. 코이트가 그런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보다 훨씬 강해지셨습니다. 이 정도면 벽에 균열을 내는 것도 빈말은 아니겠군요.”
그 말에 루미라가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그런 자기 주먹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에는 굳은 확신이 서려 있었다. 코이트가 그런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래서 루미라 님, 저희 몽중극장에서 제공해드린 꿈은 만족스러우셨는지요.”
코이트가 그렇게 그녀를 향해 정중하게 물었다. 그 말에 루미라가 미라를 힐끔 바라보았다. 미라가 그런 루미라를 향해 방긋 웃어 보였다. 그에 루미라의 안색이 조금 질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사라지고, 꿈에서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죽어있느라 보지 못했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확실한 건 있었다. 심마를 이겨냈다는 것 말이다. 미라가 힘을 섬세하게 조정한 게 분명했다.
“그래. 만족스럽네. 이 정도면 점수가 안 아까워.”
루미라가 툭 토해냈다. 코이트를 조금 존중해주는 듯한 기색을 그녀에게서 엿볼 수 있었다. 코이트가 환하게 웃으며 그런 그녀에게 명함을 몇 장 내밀었다.
“그럼 다른 분들한테 추천해주시죠. 아, 그리고 루미라 씨를 홍보에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이대로라면 언젠가 7층 승급에 성공하실 게 분명하니까요.”
루미라가 살짝 인상을 썼다. 그 까탈스러움이 얼굴에 묻어나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금방이라도 거절의 말을 내뱉을 것만 같던 그녀는 곧 인상을 조금 풀었다. 그리고 약간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줄 수 있다면 허락하지.”
“무얼 드리면 되겠습니까?”
코이트가 두 손을 비비며 물었다. 그녀가 제 가슴 주머니를 가볍게 더듬었다. 그 안에 아무것도 안 들어있음을 확인한 그녀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꿈에서 만난 요정, 이안이라고 했었지. 그것도 인형인가. 그러면 내가 그 아이를 가지고 싶은데.”
푸흡, 하는 소리가 내 가슴팍에서 들려왔다. 미라가 웃음을 내뱉은 것이었다. 미라가 그대로 내 팔을 붙잡은 채 가볍게 웃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소리를 낮추라고 손짓했지만, 미라는 내 얼굴을 보더니 더욱 크게 웃기 시작했다. 코이트가 머리를 긁적이다 그런 우리를 바라보았다. 나와 시선을 마주한 그가 나를 턱짓했다.
“인형의 주인과 대화하시죠. 저는 꿈을 제공했고, 인형은 그가 제공한 것이니.”
루미라가 힐끔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 하찮은 것을 바라보는 기색이 엿보였다.
“아, 저 녀석이 이번 꿈의 인형을 다뤘다고 했던가.”
코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루미라가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옆에 서 있는 인형들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늑대 인형을 위시한 종류를 살펴보던 그녀의 고개가 살짝 갸웃했다.
약간 의아해하는 얼굴이었다. 그 이유를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꿈에서 보였던 것보다 훨씬 약해 보이는 모습 때문이겠지. 그런 그녀의 시선은 미라를 마지막으로 멈춰 섰다.
미라가 그녀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아주 반가워하는 태도였다. 루미라는 그런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안, 그 아이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 말하며 공간 주머니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안의 몸체를 꺼내 들었다. 영혼이 부여되어 있지 않은 단순한 인형이었다. 루미라가 그렇게 축 늘어진 녀석의 몸을 보고 살짝 인상을 썼다.
그런 녀석의 몸에 마력을 부여했다. 녀석이 그대로 날아올라 주변을 날아다녔다. 그 날개에서 비롯된 가루가 허공을 수놓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루미라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녀석에게서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천천히 인형을 관찰하며 고개를 저었다.
“꿈에서는 이러지 않았는데. 진짜 이안은 어디 있지.”
루미라가 그리 말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 약간의 의심이 담겨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알기 위해 코이트를 살짝 바라보았다.
그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목을 팍하고 긋는 시늉을 해 보였다. 진실을 이야기하라는 뜻이었다. 꿈에 계속 묶이면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걸 보고 머리를 살짝 긁적였다. 이건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었는데 말이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아, 그건 제가 한 겁니다.”
그 말에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작게 갸웃하기도 하고. 또 떠다니는 요정 인형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금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저게 너였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몸을 만진 것도 너고.”
“크흠, 만진 게 아니라 최적의 상태로 조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작게 변명했다. 하지만 그게 그녀에게 크게 와닿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녀가 그대로 내게서 한 걸음 멀어졌다.
“아니, 그럴 리가. 이안 그 아이는 정말 귀여웠는데.”
“네. 그렇게 보이도록 노력했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말에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녀가 그대로 자기 가슴에 손을 올리더니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그 강한 마력에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였다.
그녀가 그대로 코이트에게로 향하더니 가봐야겠다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이 공동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금 머리를 긁적였다.
“A 아주 좋았어. 원래 그렇게 꿈에서 벗어나게 해줘야 하는 거야. 여기 일하는 다른 놈들도 가끔은 비슷한 일을 겪곤 하지. 그래야 미련을 안 가진다니까.”
코이트가 씩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미라가 옆에서 쿡쿡 웃는 것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흘렸다. 음, 7층에 오를 마법사와 좋은 관계를 다져 인맥으로라도 삼아볼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틀린 모양이었다.
뭐,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보다 이번 꿈은 나에게도 꽤 도움이 되었다. 단순히 내 꿈으로 향하기 위한 발판으로서가 아니었다. 내가 여태 알지 못했던 집착의 이유, 그 실마리를 조금이나마 잡아냈으니까.
가슴에 손을 올렸다. 내 나무에 무언가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너머에 있는 내 영혼에 문제가 있을지도 몰랐다. 코이트를 힐끔 바라보았다. 의뢰를 해결했으니, 이제 그가 약속을 지킬 시간이었다.
“`